긍정적인 밥 - 함민복
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
너무 박하다 싶다가도
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
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
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
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
국밥이 한 그릇인데
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
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
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
시집이 한 권 팔리면
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
박리다 싶다가도
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
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
글자의 길 - 함민복
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. 마치 열 손가락을 사용해 삿대질을 해대는 느낌이다. 노트에 글을 쓸 때는 글 속으로 쏟아져나가는 나와 내 속으로 스며드는 글의 힘이 함께 공존하는 것 같다. 그러나 자판으로 문자를 두드릴 때는 일방적으로 문자를 토해놓는 것 같다. 자판으로 문자를 치는 행위는 지시, 삿대질, 투척 이런 단어를 연상시킨다.
유리 - 함민복
유리는 내용이 없어 투명하다
유리처럼 다 담을 수 있어
마음은 아프기도 하다
가자
상처가 몸뚱이가 되는 유리야
상처가 문이 되기도 하는 마음아
갈대 - 함민복
바람보다 가벼워야 한다
가벼워야 흔들릴 수 있고
흔들려야 꿈꿀 수 있다
갈 때까지 가보는 거다
바람을 찍어 몸의 탄력
허공에 그려보며 씨앗 날릴
그날까지 말갛게 말라가리라
반달 - 함민복
그대도 달을 보고 있는가
반쪽을 그대가 보고 있을 달로 채워본다
어이 웃는가, 내 혹 그대 마음 베꼈는가?
가을벌레 울음 여울에
몸이 다 젖었을
그대도 나도
반달
하늘에 뜬 반달
바다에 뜬 반달
합하면 만월이라고 말하지 말게
그냥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어 주시게
그대는 어디에 있는가